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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도둑국? 중국의 표적이 된 한국 문화공정 중국의 문화 공정과 한국중국은 최근 들어 한국 문화를 표적으로 삼아 다양한 문화 공정을 벌이고 있습니다. 동북 공정에서 시작된 중국의 역사 왜곡 프로젝트는 이제 한국의 전통 문화와 인물을 중국의 것으로 주장하는 신 동북공정, 즉 문화 공정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중국의 문화 공정 사례중국은 한복, 김치, 태권도, 한글, 삼계탕, 삼겹살과 쌈 문화, 탈춤 등 한국의 전통 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K-POP을 아시안 팝이라 부르거나, 윤동주와 세종대왕, 김연아, 반기문 등을 조선족, 즉 중국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문화 공정의 목적과 의도중국의 문화 공정은 내부적으로는 국민들의 충성심을 강화하고, 외부적으로는 중국 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한 소프트 파워 전략의 일환입니다. 중국 청년들이 .. 카테고리 없음 2024. 7. 7.
SNS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인간 콘텐츠 거름막 '콘텐츠 모더레이터' 콘텐츠 모더레이터란 누구인가?콘텐츠 모더레이터는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이 생성한 콘텐츠를 현행법, 기업 약관, 현지 국가 정책 및 법률 등의 기준에 맞춰 큐레이션하고 제재 및 삭제하는 작업을 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의 유해 콘텐츠를 검열하며, 24시간 내내 인간 CCTV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콘텐츠 모더레이터의 중요성틱톡에서만 한 분기에 억 단위의 영상이 삭제된다는 사실을 통해, 유해 콘텐츠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완벽하지 않으며, 이러한 빈틈을 메꾸는 것이 바로 콘텐츠 모더레이터의 역할입니다. 이들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게시물들을 걸러내어, 사용자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SNS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콘텐츠 모더레이터의 시장 .. 뉴스 2024. 7. 6.
부자들의 도시이자 가난의 도시, 대구: 기형적인 경제 구조의 비밀 대구의 경제 상황대구는 대한민국의 경제 지표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대구의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은 274만 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이는 전국 평균의 63%에 불과합니다. 대구는 1992년 이후 31년째 전국 1인당 GRDP 순위에서 꼴등을 차지하고 있으며, 1인당 개인 소득 역시 광역시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대구의 기형적인 산업 구조대구의 산업 구조는 제조업 비중이 21.1%에 불과한 반면, 서비스업 비중은 71.1%에 달합니다. 이는 대구의 산업이 생산보다는 소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거의 없는 대구는 전국 매출액 천대 기업 중 대구 기업이 20개에 불과하며, 중견기업은 122개로 전국 중견기.. 뉴스 2024. 7. 6.
중앙아시아의 독재국가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자원 부국으로서 경제력이 강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폐쇄적인 독재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역사와 현재 상황, 그리고 왜 '잘사는 북한'으로 불리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투르크메니스탄의 역사와 독립초기 역사와 소련 시기투르크메니스탄의 역사는 기원전 2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양한 민족의 침략을 받았고, 18세기 이후 러시아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의 일부로 포함되었고, 1924년에는 투르크멘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소련 시기에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민족적 정체성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습니다.독립과 니야조프의 독재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은 독립을 선포하였습니다. 첫 대통령 사파르무.. 뉴스 2024. 6. 22.
북한에서도 최하층들이 모인 곳 '북한 아오지' 아오지 탄광,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무시무시한 이름입니다. 특히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이 패배했을 때, "아오지로 가느냐?"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했죠. 과거와 현재의 아오지는 어떻게 다를까요?과거의 아오지아오지는 과거 함경북도 경원군에 위치한 한적한 농촌이었습니다. 1920년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탄광이 개발되면서 아오지는 한반도 최대의 석탄 생산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오지 탄광은 불꽃이 길고 화력이 강한 석탄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일본은 아시아 대륙 침략을 선택했고, 아오지 탄광 개발을 서둘렀습니다. 이로 인해 아오지는 비인간적인 노동과 가혹한 폭행의 현장이 되었습니다.북한의 정치범 수용소625 전쟁 이후 북한은.. 뉴스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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